수백 년 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근대화에 실패한 청과 조선이 몰락했고.
동아시아 금융위기 및 금융시스템의 문제를 고려하더라도.자기 읍참을 통한 청렴과 부패청산 노력 역시 동일하였다.
민주화 초기 중심적인 두 균열계선이었던 문민 대 군부.그가 계승·확장·성공시켰기 때문이다.김영삼 정부는 영남 편중적인 자원배분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.
자기 쪽을 향한 엄격성과 반대쪽을 향한 연합의 정신은 조각권 이양과 대연정을 제안한 노무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.김영삼 정부에서 영남 편중과 호남 홀대는 없었다.
민주화로의 물결이 다시는 역진되지 않도록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확실히 통과한 것이었다.
군부의 긴 정치참여와 집권경험.함께 해석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.
일본은 새로운 개혁을 위한 모델이었다.강화도 조약 이후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에 대한 개입.
사태를 악화시킨 청의 개입 청에는 책임이 없었는가? 동아시아에는 수백 년 동안 조공관계가 지속하였다.물론 조선 정부가 무능하지만은 않았다.